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단 편집) === 헬기 기총소사 === 또한 지상의 공수부대 뿐만 아니라, 비행하고 있던 '''헬리콥터에서도 사격'''을 가했다.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충격적인 게, 하다못해 지상 보병의 경우 공포를 느끼고 우발적으로 사격했다는 --같잖은-- 변명이라도 가능하지만, 헬기 같은 항공기는 그런 변명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헬기 사격은 그 특성상 사전에 기지에서 탄약을 보급 받고 와야 하는 물건인데, 후술하겠지만 21일은 아직 시위대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상황이라 계엄군 측이 주장하는 정찰과 선전 목적으로 헬기를 투입했었다면 반대로 채공 시간을 위해 철저히 비무장 상태로 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 계엄군은 시위 초반부터 광주 시위대의 해산할 목적이 아니라, 애초에 시위대를 철저히 계획적으로 사살할 목적으로 헬기 등으로 중무장한 군대를 투입한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헬기라는 물건은 최소 사단 이상에서 관리하는 고급 장비다. 이 말인 즉슨 전두환의 계엄군의 사격 명령이 최소 소장급 이상(사단장의 계급)의 핵심 부역자들이 주도한 것을 추측할 수 있고, 실제로 [[황영시]] 계엄 부사령관이 지시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처음 헬기 공중 사격은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의 증언이 많이 나왔지만, 군부에서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사자 중 한 명인 조비오 신부는 1988년 청문회에 출석하여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증언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 그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보여. 그 헬리콥터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러다가 이 정도 높이에서 스윽 가면서 픽, 드르르륵 쏘는 거라. 민간인을 향해서 발사를 했다? 이건 군인의 무력 폭력 아니냐는 말이야. >---- >[[조비오]] 신부 그리고 이어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0100289113008&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01&officeId=00028&pageNo=13&printNo=1885&publishType=00010|헬리콥터 사격을 주장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1995년 검찰은 헬기 공중사격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4) 헬기 기총 소사 여부 >광주에서 무장 헬기의 공중 사격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야기되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 (...) 이에 대하여 당시 육군항공단 근무 관계자들은 헬기 기총 사격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야기하는 것으로 그러한 사격을 실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군 관계자료상으로는 5.21.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인 UH-1H 10대, 무장 헬기 AH-1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사태 기간 중 헬기가 총 48시간 동안 무력시위를 하였다는 기재 외에, 실제 공중 사격 실시 여부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재를 발견할 수 없었음. (...) 광주시내 적십자병원, 기독병원, 전남대학병원의 각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 보아도 그 당시 각 병원에서 헬기 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내원(來院)하였거나 입원, 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 165명에 대한 광주지방검찰청 사체 검시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 기총 사격에 대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207 ~ 210쪽) >---- >5.18 관련 사건 수사결과,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검찰부, 1995 '''그렇게 논란으로 끝나는 듯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36년 후 2016년,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전일빌딩을 조사한 결과 전일빌딩보다 높은 곳에서 사격했음이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112000966|유력한 탄흔이 180여 개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1980년 당시 금남로에는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으므로, 공중에서 사격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헬기 사격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국과수]]는 형태로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근거로, 사격이 헬리콥터에 탑재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66679|거치형 기관총]][* [[M60 기관총|M60]]일 가능성이 높다.]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2017년 2월, 5.18 당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http://v.media.daum.net/v/20170216100421027|M61 발칸포 탄피 3점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AH-1]] 코브라 공격헬기에 장착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칸포|M61 발칸기관포]]의 구경은 20mm다. 항공기 공격이나 부가적으로 구식 전차나 장갑차량들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며, 급이 일반 기관총과는 전혀 다른 무기이다. 탄의 크기로나 총신이 회전하는 [[개틀링 기관총]] 특유의 탄 분산도로 볼 때 경무장한 시민군에게도 쓸 만한 물건이 아니다. 특히나 일반 시민이나 구조대 간호사등 의료 지원자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s-1|공중폭격]]이나 다름없는 무차별 광역 학살이다. 이런 대구경 탄환에 사람이 맞으면 목과 사지가 산산히 분리된다. 제압 후엔 피격자들은 사실상 치료는 커녕, 이미 현장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즉 공식 사망자 165명 외에 헬기 사격으로 사망한 민간인들이 실제로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화기는 그 무게 때문에 유혈진압이라도 민간인 상대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두환 휘하의 계엄군이 아예 작정하고 학살을 계획해 저지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이없게도 이 증언이 최초로 나왔던 1989년에는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9/1819307_19354.html|당시 항공여단장이었던 송진원]]이 '''[[적반하장|반성은커녕 이 헬기 사격을 증언했던 조비오 신부와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상대로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하에서 출범한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 사격 여부를 조사했고 2018년 2월 7일, '''38년만에 헬기 사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980년 5월 21일과 27일에 헬기 사격이 있었으며, 이를 입증하는 증거로 계엄사의 헬기 작전 지침이 공개되었다. 또한 황영시 당시 계엄사 부사령관의 지시와 김재명 당시 육참 작전차장이 헬기 사격을 지시한 내용도 드러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8434541&viewType=pc|국방부, 38년만에 5.18 계엄군 헬기 사격식 인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